‘호태왕비문’에서, “(추모왕이 하늘의) 시킴을 따라 수레를 몰고 남쪽으로 순행하여 내려오는데, 부여 땅 엄리대수를 지나가게 되었다”라는 기록은 흥미로운 풀이를 하게 한다. 왜냐하면 이 지역은 정확하지는 않으나 안시성의 위치와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. 그렇다면 ‘엄리대수’와 ‘안시’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?

이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은 황윤석의 <이재집>에 나타난다. ‘화음방언자의해’에서 황윤석은 신라 옛말에 ‘아시새’, 곧 ‘어시새’가 있다고 하였다. 그가 어떤 자료를 바탕으로 이러한 해석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, 고려가요 <사모곡>에도 나타나듯이 우리말에서 ‘어시’는 ‘어머니’, 또는 ‘부모’란 뜻을 지닌다. 또한 경남 함안의 옛이름이 ‘아시량’이다.

안시성을 봉황성이라 부른 기록은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. 황윤석은 ‘봉황’은 ‘부헝’(부엉이)을 한자음으로 적은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. 이 풀이는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, ‘어머니’나 ‘부모’ 또는 ‘크고 평안함’을 뜻하는 토박이말 ‘아시’를 ‘안시’라는 한자음으로 적었다는 설명은 매우 설득적이다. 또한 <삼국사기> 동명성왕 조에서는 이 강의 이름을 ‘엄사수’ 또는 ‘개사수’라고 표현하였다. ‘엄사’는 ‘엄리’보다 ‘어시’에 더 가깝다.

이처럼 ‘엄리대수’와 ‘아시’가 동일계 어휘라고 한다면, 삼국의 언어가 매우 동질적이었음을 확인하게 된다. 비록 고구려와 신라의 정치 세력은 달랐다고 할지라도 우리 조상들의 말은 같은 뿌리를 갖고 있음을 땅이름이 보여주는 셈이다.

허재영/건국대 강의교수
출처:
한겨레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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